2009년, 11월.
생일 날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인생 첫 팀장님 앞에 앉았을 때, 내 인적사항을 확인하신 팀장님이 멋쩍은 웃음을 띄며 서랍을 뒤적이셨다.
"여기 어디 뒀는데..." 그리고는 펑, 폭죽이 터졌다.
"생일 축하해" 팀장님의 반짝반짝 불그레한 커다란 광대가 실쭉거리며 위로 솟아 올랐을 때 사무실 안의 어색했던 공기는 전보다 더 싸늘해졌다. 가족과 친구들에 둘러싸인 생일들을 보냈는데, 삭막한 사무실에서 처음보는 아저씨가 건넨 폭죽이 25살 내 생일이라고 생각하니 서글펐다. 그러나 이후의 내가 그 날을 떠올릴 땐 온통 감사하고 몽실몽실하기만 하다. 느끼한 아저씨라고만 생각했던 팀장님도 사실은 30대 중반일 뿐이었고, 사회에서 팀장도 아닌 이제 갓 입사한 신입사원의 생일 따위는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지금 나는 그 때의 팀장님보다 더 나이를 많이 먹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내가 다녔던 이 회사에서 따뜻한 순간이 결코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기억에 남는 따뜻한 순간은 바로 저 폭죽이 터지던 순간이다. 인생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했던 20대에 나는 굉장히 무서웠고 단단히 얼어있었고 표정도 잘 지을 수 없었다. 그 팀장님은 내 두려움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마흔을 앞둔 내가 짐작해본다. 힘내라고 생각보다 무서운 곳이 아니라고 응원해줬다 생각해본다.
그 여러번의 격려와 지지들이 나를 오랜시간 버티게 해주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에야 회사를 그만뒀다.
지긋지긋하다는 말로도 부족하게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었다. 퇴근하면 동기 자취방에 몰려가 술을 마시고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딱히 일이 없어도 주말에 출근했다. 물론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일이 없어도 회사에 나와서 TV를 보거나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까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9시에 출근해서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곤 했다. 그 땐 그랬다.
그러다가 내게도 공허한 시간들이 찾아왔는데, 친한 동기가 그만두거나 열심히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무산되었다거나 팀장님 더 나아가 상무님과 광고주에게 쓴소리를 들어야했던 눈물나는 순간들이 공허함은 아니었다. 그보다도 내가 하는 일들에 대한 결정권이 사라진 순간, 강한 무력감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을 보낸 이 곳에서의 내 모습이 텅 비어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육아휴직 후에도 이 일이 즐겁지 않으면 그만둬야겠다' 라고 결심하고 2년 뒤 복직했을 때, 나는 일말의 후회도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10여년 만에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 하지만 자유라는 것도 참 어렵더라. 회사를 중심으로 공전하던 모범생이었던데다 한시도 쉬어본 적이 없어서, 또 육아의 세계에 던져진 나를 쥐락펴락 하는 두 아이 덕분에 하루하루 참 바쁘다.
내 것이라 믿고 살던 회사 한켠의 직책을 10여년 만에 놓은 뒤,
친정엄마 손에 미뤄두었던 살이 토실토실하고 자그마한 두 아이 손을 잡았다.
집에 엄마가 있으니 아이들이 힘이 찬다며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아이들과 행복하게 놀고 있다.
퇴사하고 아이들과 복닥복닥 생활한지 8개월, 대개는 화창한 봄날 같다. 무엇이든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빨려 들어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시소를 타게 된다. 하루하루가 중요한 일이나 값비싼 것들로 채워지는 것도 아니다. 어느 날은 호주머니 가득 돌맹이를 넣었던 먼지 묻은 늘어난 바지를 털며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어느 날엔 자기가 엄마 옆에 앉겠노라고 세상이 다 무너진 듯 드러누워 울고 있는 두 아이를 동시에 품에 안기도 한다. 돌맹이는 반짝이는 보석이 아니고, 엄마 옆자리는 그렇게 귀한 자리가 아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들이 내가 인생에서 새겨온 가치관들을 뒤집어 놓는다.
말로 설명할 순 없지만 몽글몽글하고 간지러운 것들이 채워진다.
깨어있거나 잠든 후에도 계속해서 부대껴오는 아이들 덕에 따뜻하다.
오늘도 오른쪽에서 큰 아이가 엉덩이를 내 옆구리에 들이밀고, 왼쪽에서 잠든 막내가 내 팔을 잡아끄는 바람에 새벽부터 눈이 떠졌다.
가끔 잘 차려입고 업무전화를 받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거나, 어린이집에서 저녁 늦게 하원을 시키는 일하는 엄마들을 볼 때 외로움이나 불안이 찾아올 때가 있다. 사회에 내 자리가 더 이상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밤 늦게 까지 일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 노트북 속을 떠돌곤 하는 그런 날에도 조용히 침실에 들어가 누우면 귀신같이 따뜻한 발가락과 엉덩이들이 옆구리를 비집고 자리를 잡는다.
차가운 몸이 녹으면 마음까지도 위로가 되더라.
잘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고 어디로 가야할지 길도 잘 보이지 않지만, 일단 따뜻하게는 살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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