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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우미양가'가 뭐예요?

- 기록

by 하고봄 2024. 11. 2.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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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에서 주민등록등본 열람이 가능해져서 바로 상대방에게 PDF를 보낼 수 있다. 

거기에 출생신고서나 초, 중, 고 생활기록부도 열람이 가능하다. 특별한 뭔가 적힌 걸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이 생각나 잠시 혼자만의 추억 여행을 하고 왔다. 어릴적 사진과 함께 생활기록부 학생 평가 내용을 보는 것이 카카오톡이 열어준 새로운 트렌드라고 한다. '추억 소환'을 하기에는 아주 좋은 유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은 친구들과 고향으로 여행을 가서 생활기록부도 열람하고 현재 모습도 함께 보여주는 릴스를 찍으며 또 다른 추억을 만들기도 한다더라. 마치 타임캡슐을 열어본 것 같은 경험이었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20년전쯤 고등학교 시절 생활기록부를 열람해봤다. (수학이 양이라니..)

신기하게 선생님들 얼굴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고 그 시절 입던 교복 냄새까지 떠오른다. 기억도 하지 못하고 있던 풍물부 활동하던 내 모습도 펼쳐지고 더불어 친구들과 풍물놀이 구경하러 갔던 경험까지 떠오르는 걸 보니 정말 추억이 소환되는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수우미양가' 세대였다. 학기말이 되면 누구나 받게 되는 성적표에는 선생님이 자필로 적은 '수우미양가'가 적혀 있었고, 그 성적표를 들고 부모님 사인을 받아야만 했는데 그 중압감이 무시무시했다. 물론 요즘 세대들도 부모님에게 성적표를 보여주는 건 쉽지 않겠지만..

미스코리아의 '진선미'처럼 123등 이라고 나열하지 않아도 다들 점수를 매기게 된다. '수우'가 아닌 '미양가'는 '양가집 시녀'라거나 '집에 가', '학교에서 나가' 라는 식으로 친구들끼리도 서로 놀려대곤 했으니, 성적표를 받아들자마자 어린 마음에 눈물이 나기도 했다. 사실 '수'부터 '가'까지 나름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기는 하다. 

 

수(秀)는 빼어나다

우(優)는 우량하다

미(美)는 아름답다

양(良)은 훌륭하다

가(可)는 옳다

 

다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수가 1등이라는 건 암묵적으로 모두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수우미양가' 성적표가 '국민학교'의 유래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잔재라며 몇 년 전부터 순차적으로 사라졌다.

(내가 바로 국민학교로 입학해서, 졸업할 때는 초등학교로 졸업한 끼인 세대기도 하다) 

어떤 책에서는 '수우미양가'가 일본 사무라이들이 베어온 목의 수를 세어 사무라이의 등급을 매긴 기준이었다고, 누가 더 목을 많이 베어오는가에 따라 평가되었다는 무시무시한 유래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일본에서는 이 평가 방법을 오랜 기간 사용하지 않았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는 1941년에 '우양가' 3단 평가가 시작되었고, 이후 1943년에 '수우양가' 4단 평가가 시작되었기에 해방 전 교육을 받은 어르신들은 보통 '우'를 1등으로 여긴다고. 게다가 본래 일본의 평가방식에는 없었던 '미'등급을 추가한 것은 일제의 잔재가 아닌 대한민국 독자 방식이었다고 하니, 그 당시 우리나라의 교육계가 이 평가방식을 적극 받아들인 걸로 판단할 수 있겠다.

 

일본말만 어디서 들려와도 여전히 치를 떠는 90세 훌쩍 넘은 나의 외할머니에게서,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서 피로 새겨진 일본에 대한 증오심은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의 주인공들처럼 나에게도 심어져 있다. 한국인이라면 반일감정은 뿌리와도 같으니까. 2011년 동일본대지진, 그리고 2019년 NO JAPAN 일본제품 불매운동 이후로 사람들은 일본으로 여행 가지 않았으며, 일본을 멀리했다. 일본어를 섞어쓰는 것은 불쾌한 언행이 되었고, 일본의 문화는 조롱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일본을 멀리 하다보니 생활이 굳어졌고, 무심해졌다. 무인양품이나 유니클로를 가지 않아도 살 수 있는 괜찮은 제품은 참 많다. 

 

카카오톡 문서열람으로 추억소환을 하다보니 새삼 어린시절 일본이 대한민국에 끼친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받게 될 성적표에는 더 이상 '수우미양가'는 없을 거다. 그래도 언젠가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와 '엄마, 아빠 학교다닐 땐 어땠어?' 하고 물으면 아이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는 엄마는 되어야지. 대한민국과 일본의 관계에 대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삶이 어떻게 일본에 의해 다뤄졌는지, 그리고 그들이 우리에게 여전히 사과하고 있지 않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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